하루 25분 실행하기: 하루를 대하는 14년차 개발자의 자세

🗓 2020-09-07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 24시간을 모두가 공평하게 사용하진 않는다. 하루의 여가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는 나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단기 목표도 세워보고 장기 목표도 세워보고 포모도로, GTD도 도입하고 간츠도 사용해보고 하루 표준 계획표도 짜보고 일주일 보고서도 만들어봤다. 하루를 온전히 “노력”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시도했던 것 대부분은 조금씩 달랐지만 주로 나에게 맞는 일상 패턴을 찾는 과정이었다.

개발자로서 회사 업무시간이나 여가 시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개발과 관련된 것들로만 채워왔다. 뭐 꽤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니 나에게도 번아웃 비스름한 것이 찾아왔다. 나이가 찰 수록 그래서 책임이 늘어날수록 부담감이 불필요하게 커진 것이다.

한동안 마음의 짐을 내려두고 생각을 많이 했다. 아직도 이쁜 폰트에 신택스 하이라이팅으로 여러 가지 컬러가 잔뜩 묻은 코드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오랜 생각중에 결정한 것은 내 삶 속에서 개발과 관련된 것들의 비중을 줄이고 다른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고싶은 것은 많았고 여가시간으로 그 모든 것을 “잘”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짧은 시간의 여러 시행착오 끝에 흐름과 리듬을 끊지 않으면서 꾸준한 실행에 집중하고 부담을 완화하는 나만의 시간 활용 방법을 찾아냈다.

그 후로 1년이 지났다. 지금은 이 방법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가용한 여가시간

누구에게나 하루는 아쉽게도 24시간이다. 그 짧은 하루 중에서 여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많은 궁리를 했었다. 한때는 가장 효율적인 출퇴근 루트를 찾기 위해 출퇴근 루트 기록을 몇 달 동안 해봤고 최적의 하루 패턴을 찾기 위해 기상 시간 30분 단위로 6가지 패턴의 하루 계획표를 짜기도 했다. 여러 가지 실험 끝에 아무리 쥐어짜도 직장 생활하는 애아빠가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여가 시간은 최대 3시간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 겸 휴식시간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뺐다. 3시간의 여가 시간을 얻으려면 취침 시간으로 하루 여섯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5시간 30분 취침 3시간 30분의 여가 시간 확보가 목표였으나 몇 달간의 시행착오 후에 취침시간을 6시간으로 늘리고 확보할 여가 시간을 하루 세 시간으로 줄였다.

여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개발, 글쓰기, 음악, 독서, 명상, 운동이었다. 여기서 독서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에서 제외하고 운동도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외한다. 남은 것은 개발, 글쓰기, 음악, 명상이다. 세 시간을 확보했다지만 세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잘"하기에는 어떻게 시간을 쥐어짜도 부족했다.

25분 규칙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에 원고지 20매에 해당하는 분량의 글을 쓴다고 말하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덧붙였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무조건 달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결국 지쳐서 꼬꾸라진다. 그저 흐름이 끊기지 않고 느리더라도 나의 리듬대로 조금씩 나아지는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에 대한 성급한 기대 없이 잘 하고 싶은 것을 하루 최소 25분이라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한다면 조금씩이나마 나아질 것이고, 그것이 생산적인 일이라면 언젠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목표가 무엇이고 얼마나 이뤘느냐가 아니라 흐름을 끊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가시간으로 ”개발”, “글쓰기”, “음악” 총 세 가지 분야에 하루 최소 25분씩 꾸준히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적인 25분

초반 목표는 내가 하고 싶은 카테고리를 하루 최소 25분씩 모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발, 글쓰기, 음악의 카테고리로 하루 25분씩 총 한 시간 반을 투자했다. 중간의 5분은 잠깐 쉬거나 연장해서 사용했다. 주로 새벽 5시 30분 ~ 6시 사이에 일어나서 아침 루틴(스트레칭, 샤워, 명상, 일기, 대체식품 식사, 커피)을 하고 나면 한 시간 조금 넘게 소요되고 7시부터 8시 30분까지 두 시간 정도 집중하고 8시 30분부터 출근 준비를 했다. 독서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최소 25분은 했다(왕복 50분).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채우면 출근할 때의 발걸음도 가볍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든 카테고리를 매일 하는 것보다 카테고리별로 주 단위 계획을 세워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최소 25분이었지만 한 시간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두 종류의 카테고리만 수련(?) 해도 될 정도의 주간 계획을 세웠다. 하루에 세 종류의 카테고리를 딱 25분씩만 했다면 그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날이었거나 며칠 구멍 나서 25분이라도 채워야 했을 경우다.

현재의 주간 계획

그동안 지속적으로 조율해서 완성된 현재 나의 여가 시간 활용 주간 목표는 아래와 같다.

  1. 주 4회 이상 운동을 한다.(1회 40분 이상)
  2. 주 5회 이상 책을 읽는다.(1회 25분 이상)
  3. 주 5회 이상 명상을 한다.(1회 20분 이상)
  4. 주 3회 이상 글쓰기를 한다. (1회 25분 이상)
  5. 주 4회 이상 개발을 한다. (1회 25분 이상)
  6. 주 2회 이상 음악을 한다. (1회 25분 이상)
  7. 주 2회 이상 피아노 연습을 한다. (1회 30분 이상)
  8. 하루 한 시간 이상 집중해서 라임이(딸)와 놀아준다(이게 제일 힘들다)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차등 분배했다. 위 계획은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도 주중 하루 정도는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계획이다. 하루에 인정되는 횟수는 최대 1회다. 습관을 만들고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서 생각한 방법이기에 하루 2회를 했다고 2회를 차감하지 않는다.(빡세게 산다 참..) 주중 소화하지 못했을 때는 주말 2일을 활용해 채워둔다.

한 주에 위 계획을 모두 소화했다면 그 포상으로 주말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쉰다. 하지만 보통 그 주에 제일 잘 되었거나 더 하고 싶은 것을 몇 시간 정도 하는 편이다. 명상이 포함된 아침 루틴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한다.

결과

2019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이렇게 시간을 사용한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만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은 조금씩이라도 그냥 해본다는 마인드로 살아봤더니 아주 작지만 그래도 여가 시간을 활용한 것치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가 있었다.

  • 글쓰기: 스릴러 단편소설 1편, 판타지 시리즈물 미완성, 블로그 글 다수.
  • 음악: 믹스, 마스터까지 완료 총 네 곡, 미완성 습작 다수
  • 피아노: 교재 네 권 완료, 축혼 행진곡, 뮤제타 왈츠, 파헬벨 캐논 등 다수의 곡 숙달
  • 독서: 2020년 8월 기준 총 32권 완독(개발 서적 제외)
  • 개발: 시간 관리 앱 개발(코코아FW 버전, Swift UI 버전, React 버전), 블로그 개발

나열하고 보니 별거 없다.

언젠가부터인가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허접하지만 무작정 써보고 있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스릴러 단편소설도 한편 완성했으니 이제 나도 아마추어 소설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응 아니야..) 요즘은 주로 블로그 글을 쓰고 있다. 공개되는 글은 셋 중 하나 정도다. 둘은 차마 공개를 못하는….

독서는 이 글 때문에 테이블로 정리해보니 꽤 놀라운 숫자가 나왔다. 개발 서적을 제외하면 1년에 두 권도 읽을까 말까였는데 많이 발전했다. 글쓰기를 잘해보고자 무작정 늘렸지만 숫자를 보니 괜히 뿌듯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주로 리디북스를 이용한다.

한때 큰 뜻을 품고 있었던 음악은 취미이자 허접한 재능으로 남기려고 했지만 장비만 틈틈이 구매했지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다. 감도 많이 잃었다. 거의 8년 동안 곡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는데 나름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계속하다 보면 예전의 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트렌드를 공부할 겸 곡 카피를 위주로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피아노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는데 현재 목표했던 교재 네 권은 모두 뗐고 마지막 곡 파헬벨의 캐논을 연습하고 있다. 피아노는 음악 활동의 일부로 시작했지만 훗날 딸이 원한다면 결혼식 때 내가 직접 편곡한 축혼 행진곡을 연주해 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축혼 행진곡을 제일 많이 연습했다.

여가시간에서 개발의 비중은 정말 많이 줄였다. 개발 분야는 이 글에서 설명한 여가시간 활용법을 관리하는 앱을 만들었다. 포도도로와 타임 트래킹 앱을 합쳐 놓은 기능을 갖고 있다. 초반에는 애플 와치까지 고려해서 iOS 네이티브로 개발했다. 코코아 프레임웍을 사용해 개발했다가 Swift UI로 다시 개발했고 딱히 애플 와치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 다시 React + Mobx 조합으로 개발했다. 돌아 돌아왔지만 공부한다는 마인드로 개발했다. 메인 디자이너(와이프)가 디자인 납품을 제때 안 해주는 바람에 현재는 잠시 홀드 했다. 다음으로는 블로그를 개발했다. 블로그는 그동안 깃헙 페이지로 운영했는데 내장된 지킬을 사용하다가 이번에 개츠비를 이용해 개발했다. 현재는 개발이 완료되어 2020년 8월 15일에 배포했다. 이후 추가 기능들을 작업하고 있다. 개츠비를 활용한 블로그 개발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고민 중이다. 일단 애끼는 동생이 작성한 글이 있어 일단 그쪽으로 넘긴다.

장점

25분 여가시간 활용법은 크게 세 가지의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기부여, 집중, 실행 습관이다.

  1. 동기부여
    매일 공부를 한 시간 하는 계획을 세운다면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만일 어느 날 어찌어찌하다가 한 시간의 시간 여유가 없을 때면 “오늘은 안되겠다. 내일부터 하자” 이렇게 쉽게 포기해버린다. 30분 해도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25분이라면 어떤가? 25분은 정말 아무리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분명히 자투리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있지만 귀찮아서 정말 하기 싫은 날에도 “그래 꾹 참고 25분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어느덧 25분을 넘어 한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25분이란 시간이 도화선이 되어 게으른 나로 하여금 그 이상의 시간을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25분 하고 끝내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한다.

  2. 집중
    25분이라는 시간의 제약은 그 정해진 시간 외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예를 들어 글쓰기는 25분만으로는 의미 있는 내용을 쓰기만 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보니 25 분은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써야 할 내용에 대한 생각을 평소에 틈틈이 하게 된다. 이동할 때나 샤워할 때 혹은 운동할 때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요즘 쓰고 있는 글에 추가할 내용이나 다음에 쓸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25분 동안 글을 써야 하는데 쓸 주제가 없어서 혹은 더 이상 이어서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못쓸지 모른다는 작은 불안감이 평상시(글을 쓰지 않을 때)에도 글쓰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25분이라는 시간의 제약은 그보다 더 작은 여유 시간도 의미 있게 사용하게 만든다. 개발,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25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다음에 할 작업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3. 실행 습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거창한 목표를 세우거나 이것저것 재는 것부터 하지 말고 일단 조금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목표를 잡고 달리는 게 아니라 일단 걷기라도 하면서 상황을 살피면, 현실적인 목표나 계획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하고 싶은 것이니까 말이다. 하루, 일주일, 한 달에 25분이라도 해보면 되는데 생각만 많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잘 될지 안될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돈이 될지 안될지는 해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요즘은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길어져 일정이 많이 바뀌었다. 남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세 시간 정도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남지 않는다. 잠은 좀 늘었다.

아무튼 이런 여가 시간 활용법은 쓸데없이 하고 싶은 것만 많고 걱정도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다. 요즘은 보고 듣는 게 많다 보니 해보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어차피 이미 한 가지의 직업, 한 가지의 재능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 된 것 같다. 아마 더 하면 더 했지 덜해지진 않을 것 같다.

잘 살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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